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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공연

목소리를 드릴게요

by LUVLUD 2021. 8. 31.

정세랑 소설집 - 목소리를 드릴게요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았던 소설!

단편 여러개를 엮은 책인데 어떤 것은 재미있게 읽었고 어떤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어려웠지만

전반적으로 '요즘 사람들', 특히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점차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주제들에 대해서 

특유의 상상력을 가미해서 재미있게 풀어낸 것 같아서 이틀동안 즐겁게 읽었다.

 

또한 책을 다 읽고 나서 찾아보니 이 책이 2020년 1월에 나왔다는 것도 굉장히 흥미로운 포인트가 되었다.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

마침 코로나19때문에 2020 도쿄올림픽이 1년 늦춰진 2021년 8월에 개최되었는데

우리나라 우상혁 선수가 높이뛰기 종목에서 한국신기록을 1cm 경신했고

성적은 정말 아쉽게 4위에 그치긴 했지만 올림픽 자체를 즐기고자 하고 긍정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던 게 얼마 전이다.

높이뛰기가 핫해지자 그와 관련된 컨텐츠들이 떠올랐는데, 최초에는 모든 선수들이 등이 위로 가도록 뛰다가 어느 한 선수가 '배면뛰기'를 시도하자 기록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모든 선수들이 배면뛰기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난 뒤 이 소설을 읽게 되니 점핑걸이 '배면뛰기를 훔쳤다'는 표현이 무슨 의미인지도 더 잘 와닿았고 그들이 시간여행을 통해 낯선 곳에 떨어졌을때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상상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정말정말 짧지만 귀엽고 깜찍했던 마무리까지 참 좋았음!

 

<11분의 1>

유경의 동아리 친구들이 '기준'을 살리기 위해 준비해둔 기술들(유전자 가위며, 나노엔진이며 등)은 정말 최첨단의 미래의 것이었지만,

그 과정 자체는 뭔가 대학생들이 조별과제를 하는 것 같기도 했고 동아리에서 단체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같기도 했고

아무튼 내 선배세대 특유의 '대학생 감성'이 녹아있는 에피소드 같았다.

이 책 전반적으로 파괴된 지구라는 같은 배경이 여러번 등장하지만 이 에피에서는 결국 지구를 탈출하는 사람들이 있었던걸로 마무리되었다.

 

<리셋>

http://www.chemica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01 

 

[미세플라스틱] 지렁이가 섭취해 나노플라스틱 재배출..생물파편화 연구 초석 - 케미컬뉴스

미세플라스틱으로 오염된 토양을 지렁이가 섭취하면 더 잘게 쪼개져 관찰이 어려운 나노플라스틱으로 재배출 될 수 있다는 연구가 공개됐다. 한국연구재단은 건국대학교 환경보건학과 안윤주

www.chemicalnews.co.kr

 

작년에 이런 기사를 본 기억이 있는데, 마침 소설의 소재로 등장하니 매우 반가웠다.

소설과 달리 아직까지는 지렁이가 플라스틱을 분해해서 생성된 더 작은 '나노플라스틱'이 우리 생태계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없고, 지렁이에게는 정자 형성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세포독성을 발현시킬 수도 있다고 하니 오히려 걱정이 커진다.

이 소설에서 끊임없는 과성장과 난개발 끝에 돌이킬 수 없을정도로 오염된 지구에 거대 지렁이들이 내려와 모든 '문명화'된 것들을 집어삼킨 뒤 결국 인류는 다른 생물종에게 '지상'을 내주고 '지하'에 도시를 재건해 살아남는 방식을 택한다.

이 에피소드를 읽는 내내 바로 길 건너편에서는 신축아파트 건설 공사때문에 끊임없이 큰 소음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 소음을 배경으로 지렁이가 구한 세상 이야기를 읽으니 씁쓸하기도 하고 정말로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정말 인상깊게 읽었고 또 읽게될 것 같다.

 

<모조 지구 혁명기>

가장 이해가 안 되었던 에피소드라 패스!

 

<리틀 베이비블루 필>

기존 시스템의 불합리함과 부족한 부분을 누구나 지적할 순 있지만 이를 전체적으로 뜯어고치는 건 보통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변화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예기치 않은 상황때문에(보통은 나쁜 사고) 소잃고 외양간고치기 격으로 시스템을 조금씩 바꿔나가기 마련이다.

우리도 늘 재택근무의 필요성, 비대면 서비스의 확대, 불필요한 허례허식의 간소화 등을 이야기하곤 했었지만 기존 시스템에 익숙해서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았는데, 코로나19로 그 모든 것들이 한방에 바뀌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기억력 향상에 쓰이는 치매 치료제가 '공부 잘하는 약'으로 탈바꿈 하고 이로인해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바꾸는 증폭제가 되다니! ㅋㅋㅋㅋ 한국에서 너무나 일어날 수 있을법한 상상이었다.

그 작은 알약의 영향이 다음 세대까지 미친다는 내용까지 놓치지 않고 이어져서 더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끝으로 마지막 장에 나오는 문장이 현대인을 잘 표현해주는 듯 하다.

"매번 해결책 대신 미봉책만을 택했으며, 사람들은 시대가 흘러가는 진행방향의 굵은 화살표 위에 앉아 불행의 원인을 쳐다보지 않았다."

"작은 하늘색 알약은 모든 것을 바궈놓았고 동시에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목소리를 드릴게요>

사회에 해를 끼치는 능력을 가진 괴물들과 일목인 그리고 연선과 승균의 이야기.

연선이는 정말 '괴물'이 아니었던 걸까?

연선이를 구출해내는 대목은 생각보다 굉장한 긴박함은 없었지만 무사히 나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목소리를 잃은 승균이 사회로 복귀한 뒤 연선을 만났다면 수용소에서와 같이 금방 친밀감을 느꼈을까?

그 뒤로 연선과 승균의 삶은 평범한 삶으로 돌아갔을까? 궁금해진다.

 

<7교시>

이 소설은 2018년 11월 발표되었는데, 마치 예측이라도 한 듯 지금 코로나19 시국과 유사한 배경이라 8편 중 가장 인상깊게 읽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다양한 생물종들이 멸종하였고, 인수공통 감염 바이러스인 '웨스트나일 바이러스'가 치명적인 변종으로 돌연변이가 일어나면서 인류의 3분의 1을 잃게 된 것이다.

특히 내용 중 '아시아 독재국가가 WHO에 발병을 숨겼다'는 내용이 있는데, 현재 코로나19 사태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는 중국의 행태와 너무나 유사하여 소름돋았다.

많은 것을 잃고난 뒤에야 인류는 더 이상 자연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고, 환경주의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모든 시스템을 정비하기 시작한다. 또한 도심을 압축하고 나머지 공간을 자연에게 돌려주기로 하여 숲이, 바다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도 의도치않게 코로나19로 사람들의 경제, 사회활동이 반강제적으로 멈추게 되니, 인도에서는 스모그에 가려졌던 히말라야산맥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고 해변에는 야생동물들이 찾아왔다. 지금이라도.. 이미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가, 기업이, 개인이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한 최선을 다해서 이러한 악몽이 다가오는 것을 최대한 늦춰야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인공포궁의 발달과 사회적 공동양육 시스템의 구축으로 인해 '부모'라는 개념은 희박해지고 유전자 또한 부모세대의 유전자를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선별된 이타적인 사람들의 유전자를 물려주는 모습은 너무나 이상적이여서 오히려 가장 현실성이 없는 SF 같았다ㅎㅎ 

여러모로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

올림픽, 양궁, 대한민국. 이미 설정부터가 넘좋음

하필이면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양궁이 금메달 4개 따온 뒤에 이 책을 읽게 되다니 ㅋㅋㅋㅋ 몰입감이 최고였다.

마지막에 헬리콥터 소리에 어찌나 안도가 되던지.... 

승훈은 왜 좀비가 된 후에도 매일 같은 시간에 문을 두드렸던 것일까?

정윤에게 이 고통을 끝내달라고 매일 손을 내민건 아닌 가 싶다.

웃기게도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집에서 채소을 좀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 밖에 좀비가 창궐하는 세상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테니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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